2012년 02월 09일
게임규제에 대한 짧은 낙서.
게임에 대한 규제에 일부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은 이해할 수 없다.
납득은 이미 물 건너갔다. 게임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이들에게서
폭력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게임에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판은 만들지 아니한다. 자신의 캐릭터는
'제 2의 자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상의 자아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은 없다. 이것은 거울 속 자아라고 볼 수도 있다. 완전하고 흠결없는
이상적 자아, 다시 말해 자아와 타자 간의 경계가 없는 초자아적 형태다.
이에 반해 현실의 자아는 유한하고 흠결투성이이며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그럴 수 있는 것보다 많다. 이 거리 사이를 왕래하며 이루어지는 것을
사회화의 변증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거리에서 일어나는 히스테리는
폭력성을 띨 수...도 있다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 게임몰입
현상, 청소년들의 게임 커뮤니티는 그런 의미에서 초자아 상태로의 집단적
환원이랄 수 있다. 거기에는 그들만의 규범과 가치가 있고 이상향이 존재한다.
그들의 현실은 그런 것을 배태하고 있는가? 게임에 대한 규제는
이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마땅하다.
오자였는지 손자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상책은 싸움이
일어날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요, 중책은 적의 여건을 악화시키는 것이며,
가장 하책은 적을 죽이는 것'이라 하였다. 게임을 적이라 간주하고 규제에
대한 방도는 여기서 단초를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게임의 악영향이
치명적인가 아닌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을 이제 와 팔비틀기식으로
막아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상책은 쓸 수가 없는 작금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다행스럽게도 중책은 아직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중책마저도
요원한 현실이라면 그것은 이미 망조를 보이는 사회다. 하기야 지금
대한민국이 망조라면 망조겠으나, 적어도 중책은 시행가능하다. 그런데도
하책부터 꺼내드는 저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니 생각하지 말자.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그 속내를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차라리 대안을 생각하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위의 물음에서 그 대답은 자명해지리라 믿는다.
납득은 이미 물 건너갔다. 게임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이들에게서
폭력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게임에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판은 만들지 아니한다. 자신의 캐릭터는
'제 2의 자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상의 자아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은 없다. 이것은 거울 속 자아라고 볼 수도 있다. 완전하고 흠결없는
이상적 자아, 다시 말해 자아와 타자 간의 경계가 없는 초자아적 형태다.
이에 반해 현실의 자아는 유한하고 흠결투성이이며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그럴 수 있는 것보다 많다. 이 거리 사이를 왕래하며 이루어지는 것을
사회화의 변증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거리에서 일어나는 히스테리는
폭력성을 띨 수...도 있다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 게임몰입
현상, 청소년들의 게임 커뮤니티는 그런 의미에서 초자아 상태로의 집단적
환원이랄 수 있다. 거기에는 그들만의 규범과 가치가 있고 이상향이 존재한다.
그들의 현실은 그런 것을 배태하고 있는가? 게임에 대한 규제는
이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마땅하다.
오자였는지 손자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상책은 싸움이
일어날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요, 중책은 적의 여건을 악화시키는 것이며,
가장 하책은 적을 죽이는 것'이라 하였다. 게임을 적이라 간주하고 규제에
대한 방도는 여기서 단초를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게임의 악영향이
치명적인가 아닌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을 이제 와 팔비틀기식으로
막아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상책은 쓸 수가 없는 작금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다행스럽게도 중책은 아직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중책마저도
요원한 현실이라면 그것은 이미 망조를 보이는 사회다. 하기야 지금
대한민국이 망조라면 망조겠으나, 적어도 중책은 시행가능하다. 그런데도
하책부터 꺼내드는 저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니 생각하지 말자.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그 속내를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차라리 대안을 생각하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위의 물음에서 그 대답은 자명해지리라 믿는다.
# by 解原 | 2012/02/09 08:13 | Scribbling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