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소비에 관한 아침단상 생활의 똥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나의 점수 : ★★★★★






문재인 의원께서 시간제 일자리 확충안에 대한 비판을 연일 이어가고 계십니다. 결국 답은 근로시간 단축뿐이라고 하시는데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분은 어떤 근거를 갖고 말씀하시겠지만, 그것이 정말 명확하게 해결책이 되는 일인지에 대해 나는 말 그대로 식견이 모자라 뭐라 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보다 나는 그 소식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겨납니다. 왜 아직도 근로시간과 생산성의 양적 비례관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성을 얻고 있을까. 이것이 정말 인과관계인가 아니면 인과관계처럼 보이는 상관관계일까. 생산은 해결된 문제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미결로 남을 문제가 아닐까.

앞의 두 가지는 그렇다 치고요. 사실 가장 궁금한 건 세 번째 문제입니다. 생산이 해결되었다. 언뜻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돈만... 있다면야 우리는 평생 소비할 수 없는 재화를 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들은 이미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향후 수십 년 간 쓸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지 않나요. 그만큼 보관하는 것이 관건이긴 하지만요. 그럼 정말 생산이 해결되었느냐.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유로 "사람이 뭔가를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있고요. 두번째로는 "생산을 위한 원자재는 어디서 샘솟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해본다면 지금 우리가 생산에 대해 걱정하고 온갖 셈을 다 쳐보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간단한 결론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얘깁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지금 일하는 시간 좀 줄이고 사람들에게 휴가 1년에 한 달씩 준다고 세상 어떻게 안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았으면 법정 휴가기간이 1달이 넘는 나라들은 이미 경제가 파탄이 나도 오래 전에 났겠지요. 잘 지켜지면서도 잘 돌아가는 나라 많잖습니까. 경제가 생산성에 있다고 믿는 우매한 경제인들은 아직도 대다수이지만, 그들에게 '소비'의 문제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가에 따라 누가 덜 우매하고 더 우매한지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러셀의 에세이집을 읽다 생각나서 긁적여봅니다. 라이프로그에 추가했는데. 이 표지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것인가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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