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현장에 다녀온 소회 글싸기

민노총 총파업 현장을 다녀온 건 내가 총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거나 혹은 반정부 성향을 실천으로 옮기는 따위의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27일, 그러니까 그 전날 밤 만났던 나이가 원만한 친구는 지금 총파업을 하기보다 한번 더 협상을 걸어보고 거기서 명분을 확실하게 얻은 뒤 파업을 하는 편이 낫다는 진단을 내렸는데요. 본래 미래의 희망보다 오늘의 불편함에 민감한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보다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습니다. 그가 말했던 협상안이란 것의 현실성(은 사실 없었습니다)은 차치하고서라도 명분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다는 그의 진단에는 나도 동의하는 터였습니다. 일단 방법이야 어쨌든 정권을 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겐 "공권력"이라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나라에는 정치하는 이들의 권위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나라에는 자신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확히 인식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총파업 현장을 관찰하면서 나는 거기에서 그리 큰 희망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는 설득력 있는 것이었지만 거기에 설득되어 멈춰버리기엔 아직까지 이 나라 시민사회에 그만한 추동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동력인을 품은 적이 있기는 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오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오래된 통제와 억압의 역사는 복종과 체념을 거의 본능에 가깝게 만들어놓았다는 점을 의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일들-일시적이든 어느 정도 지속적이든 성공을 거둔 봉기의 사례는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 성공을 일궈낸 이들조차도 지금은 외려 대중봉기의 지지세력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가장 큰 불행은, 통치권력의 작동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은밀해지며 정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투쟁방식은 그에 비해 아직 투박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방법이랄 게 뭐 얼마나 있겠어 하고 애꿎은 담배 필터만 잘근잘근 씹으며 주류업계 매상만 올려주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의 본심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제 나는 만화인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페친이신 양성연 작가님의 추가로 페북 그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선 만화인들의 시국선언을 추진중입니다. 나는 이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커다란 집단 안에서 총파업을 벌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나, 사회 각계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저항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 말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집단에서 정부의 정책과 지금의 대통령이 하는 국정운영 방식, 나아가선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지금의 대통령 자체를 부정하는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하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정부가 시민을 향해 행하는 억압과 통제의 전방위적 면면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다양한 집단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사들도 전교조라는 이름 아래 모일 것이 아니라 초중고별, 지역별, 특성별 교사 모임을 따로 만들고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도 노조가 아닌 행정가, 인사권자, 개발자, 기획자, 원화가, UI디자이너, 웹 디자이너, 마케터 등 직군별로 따로 집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직업이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직업적 동질성을 지닌 이들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망설이거나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이리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굳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시민사회라는 커다란 호수 한구석에서 잔물결만 일으킬 수 있어도 실패는 아니리라 봅니다. 다만 그 잔물결을 지속적으로 일으켜줘야 한다는 조건은 뒤따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공감대만 형성이 된다면 단 10명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순진한 생각인지 아닌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덧글

  • 세진 2014/01/31 02:22 # 답글

    저는 그냥 이념적인 것을 떠나서 총파업현장이라는 곳을 쉽게 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벌써 부러움이 생기는 걸요. 몇달 전에 다녀온 서울이란 곳은 정말, 다이나믹하다는 말이 딱 떨어지더군요.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크고 거대하게), 놀랐습니다. 자극이 되더군요. 변방, 특히 보수적인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서러움도 약간.
  • 西崙 2014/02/02 08:36 #

    그래서 유럽이 참 부럽습니다. 십여 년 전 피렌체에서 약 한 달, 밀라노에서 약 한 달 정도씩을 지냈었는데, 시위가 없는 날이 별로 없더군요. 이후에 프랑스에 갔을 때도 그랬고, 남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갔을 때도 그랬어요. 어느 도시, 어느 때이건 시위는 늘 있었습니다.

    너무 시끄럽게 해서 사실 좀 짜증스럽기도 했는데요. 제가 부러웠던 건 자기 권익을 위해 사람들이 그렇게 언제 어디서건 모여서 연대를 형성하고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는 그 능동성이었어요. 1인 시위도 해보고 하지만, 늘 주위에서 듣는 말은 "왜 혼자 튀니" 였습니다. ㅋㅋㅋㅋㅋ 지금이야 뭐... 그런 것들이 "해야 할 일"에서 그리 큰 의미가 없어서 자제하고 있습니다만.
  • 세진 2014/02/02 13:58 #

    항상 용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도 연습이 필요하더라고요.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연결되고 연결되는 게 참 많고, 영향을 많이 끼치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어쨋든 다른 대안을 볼 수 있다는건 정말 저희에게 주어진 고마운 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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