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이다" 글싸기

사람은 언제나 보수적인 가치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따라서 진보는 늘 불리한 조건 하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만일 진보가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보수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경우 그것은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진보는 보수가 없는 싸움터에서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를 뿐이기 때문이다. 적이 없는 전장은 전장이 아니라 연병장이다.

진보는 그 어휘 자체로 평가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진보progress가 아닌 이동move일 뿐이다. 따라서 진보는 보수적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속속들이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앎으로부터 문제의식이 싹틀 때 진보적 정신이 잉태된다. 개별적으로 싹튼 문제의식이 서로를 만날 때 연대는 형성된다. 그렇게 해서 나아가기progress 위한 공동의 문제의식이 사회를 지탱해 온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할 방도를 제시하거나 요구한다.

보수의 특징 중 하나도 여기서 볼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진보가 시스템을 갖추는 순간, 다시 말해 제도적으로 안착되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보수다. 이 글에서 쓰이는 진보와 보수라는 어휘의 용법은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보다 언어 자체가 품은 본질적인 의미에 방점이 있음을 밝혀둔다. 진보가 새로운 보수가 되는 그 시점은 또한 새로운 진보가 싹터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뒤채이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진보는 보수의 품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진보와 보수는 이항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낳는 상호활동interaction의 관계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는 흔히 이항 대립의 관계로 상정되곤 한다. 투쟁은 진보의 태생적인 활동이지만 A에 대한 B의 저항이 반드시 A와 B의 이항 대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충돌한다 하여 이항 대립으로 보는 것은 정치적 필요에 따른 시각이다. 혹은 이것을 논리적 필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설정하는 편이 가시적 활동이란 층위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구분을 짓지 않는다면 현실에서의 진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해볼 문제는, 진보가 연대를 형성하는 시점에 발생한다.

공유된 문제의식은 하나의 어젠다가 되어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도 있고 제시되는 정책일 수도 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의식의 여러 형태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연대라는 것의 특성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대는 공유된 하나 이상의 문제의식을 매개로 발생하지만, 문제의식을 갖게 된 개별적인 맥락을 포함하지는 못한다. 개별적인 맥락 속에서의 차이는 개별적인 욕구의 차이로 드러난다. 연대가 형성되기 위해선 이 욕구가 효과적으로 포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연대 형성을 위해 욕구를 양보하고 포기한다 해서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견지에서, 연대 속에서 공유된 문제의식은 개별적 차이보다 우위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발생한 위계가 공고해질수록 진보의 연대는 보수화된다. 문제의식의 권위가 개별적 차이를 묵살할 때 진보는 내부적으로 균열하며 자체적으로 새로운 진보를 수태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며, 진보의 태생적인 특징이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말은 잘못되었다. 보수는 고여있기에 부패할 수밖에 없고, 진보는 분열된 형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보적 생각은 썩은 물을 먹고 자란다.

정치적politic이란 말의 어원을 찾아 들어가면 거기엔 "더 나은 미래를 향한다"는 뜻이 숨어있다. 기존의 그릇된 관습이나 제도를 깨뜨리고 더 나은 것을 향해 발이든 손이든 뻗는 것이 정치적이란 말의 어원에 깃든 뜻이라면, 정치적인 것은 곧 진보적인 것이란 말로 치환이 가능하다. 더불어 진보가 그러하듯, 정치적인 것은 곧 개별 주체의 숙고라는 자궁 속에서 수정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은 진보의 생득적 특성을 묘사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덧글

  • 零丁洋 2014/02/03 22:09 # 답글

    동의하지만 진보를 너무 일반화시킨 느낌이 듭니다. 사실 진보나 보수라는 말이 등장하고 의미를 갖은 것은 인류사에 최근 일부라고 봅니다. 물론 과거 사회도 모순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단지 전복이고 유사한 새로운 체제가 구체제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진보가 등장한 것은 급격한 질적인 비약이 사회 전반에 일어난 시기이며 진보는 변화의 주체가 의도적으로 결함에 대항에 새로운 비젼을 만들고 이를 추구해야 비로소 성립한다고 봅니다.

    진보가 시시각각 새로움의 추구가 아니라면 진보란 단순하게 정치적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제시된 이념을 현실화시키려는 운동이고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파생시킨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주의적 노력이라고 봅니다.
  • 西崙 2014/02/04 02:58 #

    네. 용어의 용법이 달라서 좀 그런 인상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진보가 어떤 사상체계로 제대로 드러난 건 19세기나 들어서였죠. 생시몽 같은 사람들이 다소 허황되다시피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 거기서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나면서부터 사상적인 체계를 갖춰나가기 시작했으니..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의 배신으로 실패한 이후이니, 사실 뭐 그리 오랜 역사도 아니지 않겠습니까.ㅎ (아 이렇게 말하면 사회주의를 진보로 보게 되는 건가요)
  • 세진 2014/02/04 04:20 # 답글

    그렇군요. 확실히 그러긴 위해선 개개인을 서로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겠네요. 서두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집단이 커져야 힘이 생기고, 빨리 연대를 강화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와중에 개별적 차이를 묵살시키는 일이 발생하는 것 같네요. 확실히 현실에서는 이런 진보적 집단을 만들어내는게 정말 힘이 드는 일이겠네요. 정말 소국과민 사회가 제일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이 적어야 해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