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아름다움 글싸기

반가운 만남 속에서, 그가 한 번은 아름다움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물어왔습니다.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했는지, 나의 대답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사변적인 말보다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단어들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거든요. 그의 질문에도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그리움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해요. 

 

바움가르텐에 의해 "미학"이란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미에 관한 논쟁은 있어왔습니다. 미의 개념, 미의 범주, 그런 것들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좁아지거나 넓어지거나 혹은 변하기도 해왔습니다. 한때는 그런 것들을 익히면서 아름다움에 대해 뭔가 더 알 수 있다고 믿기도 했고요. 물론 아는만큼 보인다고, 알면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더 다가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림이나 조각, 건축, 시, 음악, 소설, 만화, 사진, 영화 등 예술의 제 형식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기법적인 요소들을 알아볼 수 있다면 거기서 오는 감상의 즐거움도 배가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알기만 할 뿐,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신형철의 글에 대해 썼던 이전의 짤막한 감상에도 말했듯, 감상이란 "느꼈던" 것들을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지 "읽어낸" 것들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작품을 마주하고 작품에 대해 느낀 점들이 없다면 결국 감상문은 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현학적 유희 외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미학이 하나의 학문체계로 자리한 지는 3백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동안 미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따위에 대해 숱한 논쟁들이 있어왔지만 기실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정의가 내려진 적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고요. 1914년부터 전격적으로 시작된 반미주의가 확장되고, 전통적인 미와 추의 개념들이 뒤섞여 반목하면서 학계에서도 이제는 미에 대한 정의를 포기하고, 작품으로부터 얻는 미적 경험 즉 느낌은 어떤 것들인지, 다시 말해 작품이 줄 수 있는 느낌의 특성에 대해 충실히 서술하는 데 더욱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나는 이것이 무척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학이나 정신분석학과 같은 분야와 결부되며 비평이 현학적인 글잔치로 변질되는 경우도 왕왕 생기는 통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합니다만. 

 

그걸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미'를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가끔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제처럼 누군가 물어올 때 할 말도 있어야 할 것도 같고요. "미, 아름다움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어왔는데, "그걸 규정할 수는 없을 검미다"라고 대답한다면 불필요하게 까칠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기 십상이지 않겠어요? (나 안 까칠합니다) 이런 속물적인 이유가 꼭 아니어도 자기 느낌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전달해서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런 충동이 일어난다고 하면 좀 그럴싸할까요? 

 

내가 '그리움'이란 것을 단서로 붙든 건 그 의미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마음이란 놈은 늘 가만히 있질 못하고 어딘가를 향해 손을 내뻗습니다. 누군가를 향해서이기도 하고, 그 누군가가 사라져버리고 나면 그 누군가를 향했던 감정 그 자체를 향해서이기도 하죠. 그것이 애정이건 우정이건 미움이건 분노이건 간에 말입니다. 그것을 작동시키는 장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런 내뻗음은 더욱 격렬하게 허우적거리거나 힘차게 나아가기도 하죠. 그래서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현실을 잊게끔 하기도 합니다. 이 자극 말입니다. 이때 아무 자극이나 받아도 마음속 장치가 쭉쭉 뻗어나갈 거라곤 할 수 없겠죠.

 

사람은 각기 살아온 길이 다른만큼 각자의 정서도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또 그런만큼 그 마음속 장치들이 작동하는 원리나 방향도 달라지죠. 마음속 장치가 작동하게끔 하는 자극의 주파수가 따로 있을 겁니다. 또, 동일한 주파수의 자극을 받아도 각자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작동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마음속 장치는 보안이 철저해서, 그 주파수조차도 시시때때로 바뀝니다. 어찌나 보안이 철저한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지난달에 보고 별 감흥이 없었던 영화로부터 오늘 보며 눈물을 참지 못하는 감동을 받는 경험 따위가 그 방증일 겁니다. 

 

재미있는 건 말입니다. 좀 회의적으로 말해서, 어차피 사람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긴데, 마음의 주파수가 아무리 다양해봐야 사실 뭐 얼마나 다양하겠나. 결국 그놈이 그놈인 셈인데. 헌데 어째서 예술로부터 얻는 감상자의 반응은 그리도 제각각이며 때로는 상상도 못할 반응이 나오기까지 하느냐는 겁니다. 그런 일 적잖이 경험할 수 있잖아요. 너무너무 즐겁게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인데, 누군가는 맹비난을 하며 가진 모든 어휘력을 동원해서 그 책을 난도질한다거나, 나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해있었는데 함께 간 사람은 잠에 완전히 몰입해있었다든가 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실은 그게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작품 속에 인코딩된 주파수를 받아들이는 사람 각각이 다른 방식으로 디코딩을 하는데, 어떻게 반응이 같을 수가 있겠어요? 물론 인코딩이 다소 엉성해서 꼭 같은 디코딩 방식만이 적용될 수 있는 작품도 있긴 합니다만, 꼼꼼하게 인코딩된 작품은 정말이지 여러 갈래의 주파수를 내보내서, 디코딩하기가 여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서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석의 다양성이 도출되는 것이겠지요. 나는 이 당연한 다양성이 늘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은 우리에게 '미'와 '반미'(혹은 미와 추)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미를 바라보는 유용한 관점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간에 일련의 감동을 가져온다는 것인데요. 이 감동이란 눈앞의 것을 잊게 하는 것, 평소엔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희미하게나마 더듬어보게 하는 것, 혹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세계로 육박하게 하는 충격, 격심한 공포와 혐오 속에서 일어나는 파멸의 감각(뭐 이건 좀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과 같은 것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을 향해 뻗어가든, 마음의 작동이 일상성을 넘어선다는 점에서는 부정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그런 여러 종류의 뻗어감을 다소 "곱게" 포장한 격이 되겠지만요. 내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 정리하자면 이렇게 될 겁니다 : 비일상적 정서로 마음을 인도하는 자극. '그리움'이란 단어를 이용해서 좀 다르게 말해보자면, "일상적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게 하는 자극"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소 서정적인 데로 치우쳐 있긴 하군요, 써놓고 보니. 

 

할 말은 다 했고요. 음, 아름다움을 느꼈던 시 한 편 소개 올리고 갑니다. 읽고 나서 꽁꽁 숨겨두었던 건데, <느낌의 공동체>에도 인용되어 있더군요. 껄껄껄...;;; 뜨끔헙디다. 

 

동정조차 값싸게 느껴지는 덤덤한 연민이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시였습니다. 

 

---------------------------------------------------------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 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펼친 안심, 창공이다. 

 

문인수, <배꼽>(2008, 창비) 중 "이것이 날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