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똥

레베카 코스타의 책에선 아주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있다면, 어째서 보험은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가? 하는 것인데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한 질문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인류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 전체를 통째로 보여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안이하거나 혹은 순진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없나 싶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건, 인간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을 과학적으로 해체시켜 그 안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성과 합리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품은 나로서는 여기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헌데 몇 번을 곱씹어보니 그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는 것도 같아요. 

처음에 나는 일정정도의 허무주의도 유용하지 않겠나 생각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걸 가져서 뭐 할 건데?" 하는 겁니다. 더 가진들 삶이 윤택해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동시에 "더 갖기 위해서 파괴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리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그럼 대체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가 남는데요, 결국 그걸 알리는 방안은 과학밖에 없지 않나 싶은 거예요. 아무리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이런저런 소리 늘어놓아 봐야 강신주 꼴밖에 더 나겠어요? 

강신주를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강신주가 딱해서 그럽니다. 그 양반이 스타강사 되고 싶어서 된 거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있어온 힐링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 외에 그 사람이 결과적으로 하는 일이 뭡니까? 게다가 이거요, 2년만 지나보세요. 출판사 좋은 일만 하는 겁니다. 혜민스님도 몇 년 안 갔어요. 하버드 타이틀로 출판사만 재미 본 것 말고... 그 누구예요, 정의 거시기 쓴 사람.. 암튼 그 사람이 대체 바꿔놓은 게 뭡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Justice> 읽었다고 대한민국 사회의 정의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더 나갔다는 증거 있습니까? 안 나갔다는 증거라면 모를까. 

아 그래요, 물론 하루이틀 안에 될 일이 아니죠. 일이 년 안에 될 일도 아닙니다. 일이십 년 혹은 삼사십 년 이상이 걸릴 일이죠. 사람 하나 변하는 것도 하루이틀 안에 안되는데 세상 변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입디까. 강산이야 십년이면 변한다지만 세상 변하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죠. 혹시 모르죠, 교육이 바뀐다면 십년 안에 세상이 확 바뀌어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걸 기대하느니 평안국강상광개토호태왕이 내집에서 하숙하는 게 빠를 것 같고. 

요는 말이죠. 강신주나 혜민 같은 양반이 암만 얘기해봐야 결국 재미보는 건 출판사요, 사람들은 책값으로 지적 만족을 구매하는 데 그친다는 겁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자동차를 만들고 아파트를 짓고, 석유를 캐내고 하느라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결한 데이터로 제시해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자본전체주의가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렇게 해서 정말 피폐해진 사람살이가 남 일이 아니란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여기에 굳이 무슨 판단을 개입시킬 필요는 없어요. 물론 이 데이터들 자체가 의도를 포함하고는 있겠지만, 데이터 자체는 사실이니까요. 

"봐, 너네 이래. 이런 상황이야. 남 일 아니야. 그래도 가려면 가. 그렇게 해서 죽든지 말든지. 다 죽자 그냥." 

차라리 이런 말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아맞다. 그런 거 제시해준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리가 없군요. 그럼 일단 당장의 삶이 불편해지고, 생각이란 걸 하느라 일상이 피곤해질 테니까요. 또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겠죠. 

"너희들은 저런 거 보지 말려무나. 저런 사람이 오면 그냥 무시해." 

난 왜 이걸 잊어버리고 여태 허튼소리 지껄인 거죠? 시간 디기 많은갑네. 나 바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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