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똥

뉴욕에 일이 있어 저지시티에 사는 완미씨네 잠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때마침 완미씨네 부부는 어디 멀리 오랫동안 여행을 간다며 집을 내게 맡겼다. 옛날 포항에 살 때 아파트랑 그 집이 구조가 꼭 같았던 건 신긔방긔, 내가 덮고 자던 이불까지 같아서 더 신긔방긔. 집에 들었더니 준범씨가 고기를 굽고 있었다. 거실에서 고기를 굽던 준범씨는 고기를 설익힌 상태에서 다시 주방으로 가져가 마저 익혔다. 완미씨는 짐을 싸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인지 여행을 준비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에선 통제구역에 대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완미씨에게 저게 무슨 얘기냐 물어봤지만 짐 싸느라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준범씨에게 물어보니 고기만 열심히 굽는다. 뭐, 별 일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발 밑에 속옷 같은 것이 툭, 걸렸다. 주워들며 '이거 짐에 들어가야 되는 것 아닌가요?'하고 물었다. 완미씨가 부산스럽게 그걸 받아들고 얼른 여행가방에 챙겨넣었다. 그 일 때문에 완미씨는 준범씨에게 한바탕 혼이 났다. 하루이틀 갈 것도 아닌데 짐을 계획적으로 싸지 않고 부산을 떠니 그렇게 흘린다며 장장 한시간 가까이 완미씨를 앉혀놓고 조용조용히 야단을 쳤다. 울기까지 하는 완미씨에게 '조곤조곤 화내는 남편을 상대하는 요령'을 말해주려다 준범씨가 자꾸 엿들으려 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부부가 집을 떠난 뒤 나는 뭘 좀 사야 할 것이 있어 비니를 쓸지 캡을 쓸지 잠시 망설이다 캡을 쓰고 나섰다.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지 어색했다. 구역 폐쇄 30분 전이라고 했다. 응? 폐쇄라니? 여기 그런 말 없었던 것 같은데? 일상적인 모습들이었지만 사람들의 눈빛은 불안감과 금세 폭도로 변해도 이상할 것 없을 사나움을 감추고 있었다. 마트로 들어서려다 내 뒤에 선 노인에게 물어보니, 젊었을 때 자기가 사회운동깨나 했던 사람이라며 엉뚱하게도 국가와 개인의 자유와 소수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고도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60년대에 이런 세대가 있었지 참.. 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듣는데, 내가 들어가기 직전에 마트가 폐쇄되고 갑자기 세상이 멈춰버렸다.

아 젠장.. 하며 그 노인에게 잠시 입 좀 다물라 하고 다시 돌아보니, 마트 입구에 내걸린 커다란 화면에서 마트 내부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지역방송(저지시티에 지역방송이 있는지 모르겠다) 앵커의 멘트가 같이 흘러나왔다. 방금 저지시티 내 일부 구역이 폐쇄되고 실험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불안해하기만 했을뿐 아무도 실험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열심히 앵커의 멘트를 경청하며 그 화면에 집중했다. 뒤에서 떠들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안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마트에 살포되었다고 했다. "What the hell is that...?" 뒤에 섰던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A zombie store it turns out to be..." 내가 마주 중얼거리자 노인은 "So it is.."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둘도 그랬지만 사람들도 괴이쩍을 정도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방금 전까지의 불안함이나 사나운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마트 내에서 살포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된 듯 그들은 생기없는 얼굴로 탄식만 했다.

화면에선 어느새 피칠갑을 한 좀비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사냥하는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좀비들은 생전에 채식을 했는지, 생살을 뜯어먹는 좀비들을 보곤 몸서리치며 과일 진열대에서 배를 채우기도 했다. 화면은 굵직굵직한 파이프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천장으로 옮겨갔다. 눈만 꿈뻑거리는 이상한 회색 벌레가 거기에 잔뜩 붙어있었다. 나는 앵커의 멘트가 나오기도 전에 그것이 감염체라는 걸 직감했다. "그놈 귀엽게도 생겼네"하고 중얼거리자 뒤의 노인은 "What was it? You're speaking not like us. Where are you from?" 하고 물었다. 내가 씩 웃으며 "Does it matter to you in this mess?"하고 묻자 그는 "Young but sharp"라고 응수하며 덩달아 웃었다.

그때 천장에 붙어있던 녀석들이 밖에서 비추는 카메라 빛을 발견하곤 갑자기 마트 밖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통풍구를 타고 감염체들은 급속한 속도로 공기중으로 번져왔다. "Oh, fuck me." 내가 중얼거리자 노인은 그 다급한 순간에도 "Don't you ever say 'f' words. Cause you can't. Understand?" 하며 잔소리를 했다. 그의 말이 끝나갈 무렵 감염체 두세 개가 내 오른쪽 어깨와 승모근 부위로 파고 들어왔다. 화면에서 나오는 앵커의 멘트에 따르면 그 감염체는 혈관을 침식해 들어와 온몸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사람의 몸을 숙주로 만들었다. 시간은 약 20분 정도 걸리는데, 사람에 따라선 20일까지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 안내멘트가 나오는 동안 화면에선 숙주가 되어 좀비화하는 사람의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노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Nice to meet you, anyway. Go get some rest before the time comes."

감염체들은 얌체공처럼 통통 튀거나 불규칙하게 하늘로 퍼져가며 숙주를 찾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노인을 보낸 뒤 그 모양새를 지켜보며 "내 원, 이럴 줄 모르고 통제구역 운운했나. 어째 정부 관료란 것들은 서류 따라 다들 움직이는 줄 아는 모양이네."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이대로라면 대륙 건너 전세계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쨌든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났다. 문자라도 쳐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하긴 죽고 나면 그게 다 뭔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게다가 공중으로 날아다니며 아무 계기가 없어도 감염되는 이 괴이한 것들로부터 누가 자유로울까 싶었다. 그도 언젠가는 감염될 거란 생각이 들자. 운좋게 내가 그의 앞에 서게 되더라도 이미 그가 사람이 아닐수도 있겠다 싶었다. 혹여 그가 날 알아본다 해도 나 역시 곧 좀비가 될테니 그건 중할 일이 없었다.

5분 정도 되는 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고 그동안 감염체들은 내 오른팔을 완전히 먹어치웠다. 뜻대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몇 분 내로 내 왼손까지 못 쓰겠다는 생각에, 나는 어디서 났는지 리볼버를 들어 입으로 탄을 채우기 시작했다. 총신이 길고 은색이었다. 아마도 매그넘이었던 것 같다. 탄을 모두 채우고 장전하면서 나는 '이거 하나면 대가리가 아작날 테니, 저 흉한 꼴 되기보단 깨끗하고 좋군'하고 머릿속으로 읊었다. 아직 내 주위에선 좀비가 된 사람이 없었다. 다들 감염체를 피해 집으로들 가버렸고, 마트 안에서 아수라장을 벌이는 좀비들이 생전에 몰던 차 몇 대만 놓여있었다. 무척 조용했다. 묻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죽을 수 있겠구나 하고 희미하게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곤 정확하게 내 이마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매그넘치곤 소리가 좀 얇다고 생각하면서 잠에서 깼다.

뭔 꿈이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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