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간 <제국의 위안부> -슬로우뉴스 기고글 글싸기

영화 <아무도머물지 않았다>는 개별적 역사가 종합적인 역사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볼 수 있다. 각자의 기억에 없었던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며 영화 속 인물들이 믿었던 진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침내 해당 사건의 전체 윤곽이 드러난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마지막의롱샷은 우리가 말하는 종합적 역사가 무엇을 간과하는지를 아프게 보여준다.

심한 우울증으로 사실상 사건의 중대한 원인을 제공했던 사미르의아내는 바람 피운 남편에 대한 증오로 괴로워하면서도 남편의 냄새에 눈물 한 줄기를 떨구는 삶의 모순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전 과정에서 그러한 모순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음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시사한다.

역사라는 것이 그러하다. 그것이어떤 정도의 총체성을 지니더라도 개인의 삶이 지니는 모순점들을 일일이 보여줄 수는 없다. 가려진 개인의기억은 역사에 가려 시야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거시적 역사가 지닌 시각성이다. 이 시각성은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의 구도가 경직되어 있을수록 총체성으로부터 멀어지며 그만큼 많은 것들을시야에서 배제시킨다.

거시적 관점의 경직성이란 바꾸어 말하자면 단순성이라고도 할 수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같은 이분법적구도가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보다는 약간 더 복잡한 형태지만, 우리가 흔히 민족의 대성군으로숭앙해마지 않는 세종대왕의 예를 들어보자.

세종대왕의 치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새로운 활자기술로부터 시작하여 정확한 천체관측기술, 영토확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글창제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이 있다. 그러나 이를근거로 단순히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군주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음사에서 출간한 한국사 시리즈는 여기에 대해 의미 있는 설명을제공한다. 그 첫 권(<민음한국사 조선01: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에는, 당대의 과학기술 특히 천체관측기술은 그것이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왕조의 정당성을 보증하고자한 의도라고 봄이 온당하다는 지적이 있다. 왕은 하늘이 내는 것이며 따라서 조선왕조가 천명을 받았음을정당화하는 것이 당대 천문학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세종조의 과학기술 발달은 현재 우리가생각하는 백성의 편익을 위한 기술계발이기보다는 성리학적 질서에 충실한 통치의 부수적 결과라고 말함직하다.

왕의 치적이라는 거시적 프리즘으로만 본다면 세종대왕은 세계사에서도찾기 힘든 성군이며 애민군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왕조의 정당성에 대한 당대의 통념을 아울러 살필수 있는 시각을 견지할 때 우리는 보다 온전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지난 시대를 어떤 프리즘으로보는지에 따라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이 나뉘는 셈이다. 그러기에 과거를 되돌아봄에 있어 더 많은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쟁점의 중심부에 놓인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이런 점에서 평가 받을 만한 시도로보인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우리나라가 피해자였음은 부인할 길이 없으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프리즘으로만 당대를 돌아볼 때 시야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일본의 국가적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적차원에서 벌어진 범죄가 내부적으로 어떤 폭력과 모순을 양산해냈는지를 더욱 세밀하게 살피기 위해 더 정교한 프리즘을 설계하는 일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비난하는 목소리에서 가장 흔한 것은 바로 이점을 외면하는 데서부터 오는 패착으로 보인다. 보다 총체적인 시각을 위한 저자의 시도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을 와해시키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되풀이하건대 그의 시도는 일본의 식민통치가 어떤 형태의 폭력을 조장하고 방기했으며, 어떤 삶의 모순들을 낳았는지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그 죄상을 더욱 철저하게 따져 묻기 위한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정교한프리즘을 설계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의 교착상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선 거칠고 단순하다. 말하자면문제의식에서 해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논리적 모순이 일어난 것이다. 이점은 반드시 비판을 받아야 하며앞으로 보완될 사안이다. 박노자 교수의 비판은 이점을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으로 보인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67740)

문제는 이것이 법정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소송을 맡은 박선아 교수는 방금 지적한 부분은 학술적 논의의 문제이기에 자신은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다는 표현 하나만을 갖고 간다고 하였다. (http://www.ytnradio.kr/program/?f=2&id=30460&s_mcd=0214&s_hcd=01)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은 박교수의 문제의식에서 정교한 프리즘 설계를 위한 핵심적인 장치에 해당한다. 그러한 장치를 이용할 때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위안부들의 모순된 삶과 그들에게 가해진 갖은 폭력을 세밀하게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이 문제였다면 형식적 동질성내지는 기능적 동질성과같은 보다 딱딱한 용어로 바꾸어줄 것을 요구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 본인으로부터 확인한결과 수정이나 해명에 관련한 요구는 없었다.

이것을 곧바로 소송으로 가져간 박선아 교수의 설명은 법이라는공적 영역의 시각성을 간과한 결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동지적관계라는 장치로 설계된 시각에서 그 장치를 떼어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은, 떼어낸 부분에 연결된 논지-맥락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학술적 논의가 아무리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 안에서 건설적 비판과 보완이 이루어진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면의 논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법이라는 영역에도 시각성이 있다. 그것은 역사에서의 시각성보다도 그 프리즘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역사가이미 지나간 것에 관한 되돌아봄인 반면 법정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중석 꼭대기에 있는카메라와 그라운드 옆에 있는 망원카메라 사이의 시각차이에 비견할 수 있다. 현장성이라는 것이 전체를조망하는 시야를 가리고 동지적 관계라는 선수의 움직임(표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기전체(논지의 맥락)를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인식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가려진 맥락이 논의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통념상 위안부문제는 비단 위안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국민 모두가 맥락을보아야만 한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반복하건대, ‘법정에 담긴 시각성은 맥락을 보려는 시각을 방해할 공산이 있다.

이미 그러한 현상은 나타나질 않았는가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