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바스카, 이기홍 역,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2007, 후마니타스 Books

제가 통섭 내지는 융합이란 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지는 1년 남짓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10개월 정도인데요, 데이빗 윌슨이 <통섭>이란 책을 쓴 이후로 컨버전스 같은 그 어슷비슷한 단어들이 유행을 타고 있죠. 그 책이 아마 1999년에 나왔을 겁니다. 어쨌든, 제가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 과학이론이나 수학식, 과학기술은 예술이나 형이상학적 논변들하고 어딘지 닮은 데가 있다.

 

처음에는 과학을 바탕으로 모든 학문이 이합집산을 한다는 것에 대한 찜찜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어요. 그건 아무리 봐도 통섭이 아니라 동원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통섭이란 건, 각 분야가 자기 고유의 특질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모호하고 낭만적인 어구로 들으실지 모르지만, 그때 저에게는 그랬어요. 그러다가 이전에 융합에 대한 노트를 작성하면서 썼듯, “각 분야의 내적 구조에서의 유사성과 차이점 탐구”에로 생각이 옮겨갔죠. 이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일단 발전으로 보고는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 이 책인데요. 기본적으로 이건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에서의 철학적 탐색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소개하고 비판을 가미한 앤드류 콜리어의 <비판적 실재론>(같은 출판사)에서는 이것을 과학철학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책 표지에서 말입니다. 어차피 사회학을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며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가고 있으니(거의 미국이 이런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과학철학이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을 듯합니다.

 

굉장히 난해합니다만, 로이 바스카의 문제의식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리라고 부르는 어떤 사상적 이론적 결은, 그 안에 그러한 결을 양산해내는 구조가 숨어있다는 점 그리고 그와 같은 구조는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논변의 결과로서 나오는 사상이나 이념 같은 것들은 논리적 틀거리 내에 갇혀있기에 그것이 서로 충돌할 경우 화해 가능성이 적으나, 만일 그 틀거리를 형성하는 보다 깊은 구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화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특정 층위에서의 논의가 교착상태에 머무르면 그보다 상위개념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는 슈마허의 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합리성과 논리적 체계에 대한 신뢰는 일종의 분열증을 낳는다고 저는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나마 조금씩 더 깊어지면서, 이 합리와 논리에 대한 거의 맹목에 가까운 신뢰를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를 고민해왔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분법적 논지뿐만 아니라 논리에 의한 충돌들을 해소하는 방안을 향한 고민이었습니다. 세상은 논리 같은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잖아요. 사실상 논리적 나눔이란 문제해결을 위한 편의상의 분할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눈 뒤에 다시 합치는 데 애를 먹는 사례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눈 이들의 어리석음이기보다는 논리와 말글이란 것의 본원적인 특징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논리적 나눔에 의한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합치는 데 실재론은 강력한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 보입니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해방의 사회과학’에서 ‘해방’이란 이런 뜻으로 쓰인 말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한번밖에 읽어보질 않았기에 저도 여기에 대해 세세히 뭐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복해서 꼼꼼히 살피며 함께 공부하는 분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해야 모두 소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또 이 짧은 글에서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내용은 아니고요. 아무튼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라면 진득하게 들고 파보실 가치가 충분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절판되었지만요.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합정동에 있는 후마니타스 책다방에 가시면 아직 몇 권 있을 거라는 제보가 있습니다. 맴이 동하신다면 가보시길.:)


덧글

  • 2014/10/28 12: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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